<고찰 : 구석기시대 유물분석>
2016~2018년에 이루어진 지표조사에서는 고려~조선시대의 유물산포지로 보고되었다. 그 후 2018년에 이루어진 표본조사에서는 후기구석기시대의 2개 문화층과 뗀석기가 확인되었다. 이러한 결과에 근거하여 유적의 분포 범위 및 석기 유물상을 명확히 확인하기 위한 정밀발굴조사로 변경되었으며, 전체 12,227㎡가 발굴되었다. 해당 유적에서는 모두 1,939점의 유물이 수습되었다. 이 가운데 1,898점은 문화층에서 출토되었고, 41점은 지표에서 수습된 것이다. 전체 발굴범위 내에서도 주로 구릉 말단부와 접해 있는 남쪽 및 서쪽 조사구역에서 유물이 밀집되어 나왔다. 지층 및 문화층별로 집계해 보면 1문화층(명갈색 찰흙층)에서 299점, 2문화층(암갈색 찰흙층 상부)에서 1,415점, 3문화층(암갈색 찰흙층 하부의 담갈색 찰흙층과 적갈색 모래자갈층의 경계부)에서 184점이 나왔다.
1. 유적의 형성과정 및 시기
유적은 서쪽으로 태화산(641.1m), 북동쪽으로 국수봉(423.8m), 동쪽으로 양각산(381.5m)과 해룡산(367.1m), 남쪽으로 금박산(424.9.m) 등이 이어져 골짜기 지형을 이루고 있다. 그 사이로 노곡천과 유정천이 나란하게 동ㆍ북류하면서 도척면 일대를 가로지른다. 특히 노곡천과 유정천의 합류부보다 더 상류로 가면서 유적 일대는 플라이스토세 말의 선상지성 단구가 발달해 있다. 유적 주변의 해발고도 약 170m 이상의 위치에서 확인되는 선상지성 단구 퇴적층은 적색으로 토양화된 니질층이 자갈역층을 피복하고 있다. 단구 퇴적층은 현재보다 온난했던 최종간빙기 동안에 형성된 지층으로 보고되었다. 이들 이른 시기의 단구퇴적층은 최종빙기 동안에 두부 침식의 형태로 개석되면서 최종빙기 아간빙기를 거치며 선상지 말단부를 따라 쇄설류와 니류가 발달하였으며, 망상하천 작용으로 해발 약 163~164.5m 부근에서는 하성 사질층과 역층이 유적 전반에 걸쳐 잘 나타나고 있다. 최종빙기 최성기를 지나면서 하성퇴적층은 기준면이 하강하면서 현재의 노곡천이나 유정천 현재 하상 주변에서 유수와 평행 방향으로 하성 충적대지가 형성되어 있다.
현재 유적은 남서-북동 방향으로 길며 낮은 구릉(해발 174m 내외)의 북쪽 말단부와 평지에 해당된다. 유적 뒤(남동쪽)의 낮은 구릉 너머에는 직선거리 약 200m 지점에 유정천이, 유적 앞(북서쪽) 약 500m 지점에는 노곡천이 서쪽에서 동쪽으로 곡류하고 있다. 현재 조사 지역은 남쪽에서 북쪽으로, 서쪽에서 동쪽으로 완만한 경사와 단차를 이루며 낮아지는 논으로 개간되어 있다. 유적의 층위는 기반암 풍화대를 포함하여 모두 7개의 지층으로 구성된다. 아래에서 위로 가면서 편마암류 풍화대(Ⅶ층)-담적갈색 사질찰흙층(Ⅵ층)-하부로 갈수록 물 영향이 뚜렷한 황색 찰흙층(Ⅴ층)-담황갈색 니사질찰흙층(Ⅳ층)-암갈색 찰흙층(Ⅲ층)-명갈색 찰흙층(Ⅱ층)-경작 및 표토층(Ⅰ층) 순으로 쌓여 있다. 구릉 말단부와 평지부가 만나는 지점 주변에는 Ⅴ층 아래에서 모래자갈층이 드러나며, 그 겹겹이 쌓인 모래자갈 사이에서 3문화층이 확인된다. 그 위로 Ⅲ층 상부에서 석영맥암을 주로 이용한 2문화층이 확인되었고, 주로 서남쪽 조사구역에 접한 일부 구역에서는 Ⅱ층에서 1문화층이 드러났다. 전체적으로 유적의 지층은 남쪽 배후 산지에서 유래한 각력질 잔자갈과 니사질이 혼재하며, 사면붕적층의 퇴적물 사이에는 사질 찰흙이 충진되어 있다. 실제 조사 중앙부의 지층 단면에서는 Ⅲ층의 암갈색 찰흙층 내부에 15~20㎝ 두께의 모래모난돌층이 2번에 걸쳐 흘러내린 흔적을 읽을 수 있었다. 이러한 양상을 볼 때 각력질 암쇄류가 사면을 따라 붕적되는 과정에서 찰흙층을 침식하면서 섞이는 양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는 최종빙기 말기 동안 아빙기와 아간빙기를 거치면서 사면 작용이 왕성한 지형적 영향으로 반복적인 쓸림이 있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유물이 집중적으로 분포하고 있는 사이에서 드러난 목탄을 시료로 AMS-14C 절대연대 측정이 이루어졌다. 16칸에서 출토한 C-13번 숯(해발 165.6m)은 25.1±0.2 ka BC, 22칸의 C-15번(해발 165.4m)은 25.2±0.2 ka BC의 측정값이 나왔다. 이 측정값으로 볼 때 2문화층에 해당하는 암갈색 찰흙층(Ⅲ층)의 상부는 최종빙기 최성기(LGM)에 형성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아울러 보조 지층으로 살펴본 서쪽 조사구역의 담황갈색 니사질찰흙층(Ⅳ층)과 그 아래의 적갈색 모래자갈층 사이의 경계부에서 3문화층이 확인된다. 모래자갈층 바로 위의 니사질찰흙층(해발 165.2m)에서도 목탄을 찾았고, 이 시료로 연대측정하여 42.9±0.5 ka BC의 결과가 나왔다. 한편 3개의 문화층이 나오는 중층유적이면서 고토양층이 안정적으로 퇴적된 서쪽 조사구역의 경우 절대연대 편년을 시도하기에 좋은 여건으로 판단되어 OSL 연대측정도 수행하였다. OSL 측정 결과를 보조 지층인 12칸 단면에 정리하면, 3문화층의 상한 연대로 볼 수 있는 Ⅴ층(적갈색 모래자갈층)에서는 40.8±6.6 ka BC, 3문화층의 하한으로 볼 수 있는 Ⅳ층(담갈색 찰흙층)에서는 39.0±4.3 ka BC, 2문화층의 유물 사이에서 시료를 채취한 Ⅲ층(암갈색 찰흙층)의 측정치는 26.7±1.6 ka BC, 1문화층에서 채취한 시료는 28.7±0.9 ka BC 등으로 정리되었다. 특히 목탄으로 잰 3문화층의 절대연대와 OSL 방법으로 측정한 3문화층의 상한 연대가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 지질 환경의 측면에서 볼 때 유정리 유적은 최종빙기의 초·중기 말부터 최종빙기 최성기에 걸쳐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에 절대연대측정 자료를 종합해 볼 때 3문화층에서부터 볼 수 있는 고인류의 점거 및 활동은 MIS 3기 말경부터 MIS 2기의 최종빙기 최성기에 걸쳐 이루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2. 문화층별 석기문화
유적에서는 모두 1,939점의 유물이 수습되었다. 이 가운데 1문화층에서는 299점이 출토되어 전체의 15.4% 정도이다. 가장 많은 유물이 출토된 2문화층에서는 1,415점의 유물이 나와 전체의 73%를 차지한다. 다음 3문화층에서는 넓게 펼쳐진 모래자갈층 내에서 184점의 유물이 나와 전체의 9.5% 정도이다. 그리고 나머지 2.1% 정도의 유물은 지표에서 수습하였다.
1) 1문화층
1문화층(명갈색 찰흙층)에서 나온 석기는 모두 299점이다. 발굴조사 전체 범위 중 주로 서쪽 조사구역과 남쪽의 비탈사면부에 한해 안정적인 퇴적 상황이 확인되었으며, 그 외의 조사 지역에는 이미 삭박된 곳이 대부분이었다. 석기의 집중 분포는 22칸, 12칸과 16칸, 24~30칸 등에서 두드러졌다. 299점의 유물 중 238점이 석기제작과정의 산물류에 해당하여 전체의 79%를 차지한다. 여기에 석기제작을 위한 공구류로 망치가 5점 출토되었다. 이로 볼 때 주로 석기제작이 벌어지던 곳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도구류는 47점으로 전체의 16% 정도 나왔으나, 잘 만든 정형적인 도구보다는 상대적으로 간편하게 만들어 쓰는 잔손질있는석기의 비율이 높은 편이다. 한편으로 도구 중에는 쐐기가 6점으로 가장 많이 출토되었으며 밀개도 5점 나와 비중이 높은 편이다.
석기 제작에 사용한 암석은 석영맥암이 66%로 가장 비중이 높고, 규암은 20% 정도 차지하여 차이가 크다. 한편 1문화층에서 규암은 그리 비중이 높지는 않으면서도 주로 22칸에서 출토된 점은 특징적이다. 특히 유적에서는 편암 및 편마암, 화강암류의 주변 석재가 많이 이용되고 있고, 석영맥암도 불순물이나 돌결이 발달한 것이 대부분이다. 그런 가운데 쐐기는 정질의 석영맥암을 이용하면서도 매우 작은 크기에 이르기까지 사용된 것을 볼 수 있다. 쐐기를 이용하는 일이 빈번했음을 알 수 있으며, 좋지 않은 석재 사정이 반영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2) 2문화층
2문화층(암갈색 찰흙층)은 1,415점이 유물이 출토되어 고인류의 활동성으로 볼 때 가장 적극적인 석기 제작 활동을 기대할 수 있다. 1문화층과는 달리 구릉 말단부와 평지를 구분하지 않고 전체적으로 안정적인 퇴적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한 면을 반영이라도 하듯 동일한 모암으로 석기떼기를 벌였다고 생각되는 석영맥암제 석기 떼기 집중구역(12, 16, 19칸)에서는 기둥구멍형 유구가 확인되었다. 그 주변에서는 다량의 숯도 함께 나와 고인류의 활동성을 뒷받침할 수 있는 실질적인 자료를 확보하였다. 또한 석기제작터로 추정되는 곳과는 거리가 있으나 불땐자리 추정유구가 확인되었으며, 그 안에서도 소토 덩어리와 목탄 등이 함께 나왔다. 출토유물을 비율로 따져보면 역시 조각과 부스러기, 격지가 전체 유물의 72%를 차지하며, 망치도 11점이 나왔다. 그리고 도구류 중에서는 특정 도구보다도 손질 및 잔손질있는석기 등 가장자리 날을 확보하여 짧고 간단하게 잔손질한 도구가 가장 많다. 잘 만든 정형의 도구류 중에는 밀개(10점)와 부리날(9점)의 비중이 높다.
석기 제작에는 석영맥암(42%)을 가장 많이 이용하였고, 편암과 편마암, 규암 등을 보조적으로 이용하였다. 주변 환경을 살피는 과정에서 지질도에서 확인했듯이 재지 석재를 다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1문화층과 달리 몸체를 조정하는 예가 확인된다. 때림면 조정 외에도 격지면의 길이를 조정한 것, 너비를 조정한 것 등도 확인된다. 격지 중에는 첫격지 외에 여러면석기에서 떨어져 나온 격지, 모루망치떼기 기법 구사 중에 떨어진 격지 등도 확인되어 특정 격지떼기 기술이 확인된다. 특히 도구의 비율로 볼 때 석기제작터의 성격이 가장 명확하며, 16칸에서 나온 특정 석영맥암의 분포 상황을 보고 접합 시도했으나 직접 접합 유물이 없는 것으로 보아 유정리에서 떼고 일부 제작 결과물을 들고 다른 곳으로 이동했을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2) 3문화층
담갈색 찰흙층의 하부와 그 아래의 적갈색 모래자갈층의 경계면에 자갈이 겹겹이 쌓여 있고, 이 사이에서 뗀석기가 확인된다. 유물 중에는 날이 신선한 것과 마모된 것이 혼재되어 있다. 한편 마모된 흔적이 있는 것 위에 다시 날이 신선한 것이 남아 있어 하나의 유물에 2시기 이상의 흔적이 남아있는 예도 있다. 3문화층에서는 모두 184점의 석기가 나왔는데, 기본으로 석기가 중대형이다. 유물의 종류는 몸돌, 격지와 조각을 비롯하여 망치, 불탄자갈돌 등이다. 도구 종류로는 잔손질있는 석기가 41%를 차지하면서, 격지와 조각 및 몸돌이 전체의 42%를 차지하고 있어, 유물 조성 비율로 볼 때 독특한 양상이다. 다만 3문화층 퇴적 환경이 지속적인 침수로 조각이나 부스러기가 남을 수 없는 환경이라는 점, 문화층 전체 조사가 아니라는 점 등에서 유물 조성의 특징을 그대로 해석할 수는 없다. 다만 독특한 환경 및 부분적인 조사임을 감안하더라도 석재 산지로 볼 수 있는 자갈층 위에 잔손질된 도구류의 빈도가 대단히 높게 나타나고 있다. 이로 볼 때 석재 산지 및 제작터 이상의 기능이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석기 제작에는 다른 문화층과 마찬가지로 석영맥암이 가장 많이 이용되고 있고, 석영맥암 만큼이나 규암을 많이 이용했다. 특히 석영맥암과 규암이 70%를 차지하고 있다. 그 외에 편암 및 편마암 등 주변 석재가 주로 이용되고 있다. 3문화층에서는 여기에 응회암이 추가되었는데 단 2점 뿐이다. 암석 중 석영맥암과 편암 및 편마암은 중형인 반면, 규암은 초대형 몸돌이 많다. 자갈층에 쌓인 석재 중에는 들 수 없을 정도의 초대형 암괴가 곳곳에 산재하고 있는데, 이런 초대형의 암괴는 거의 규암이다. 유물 중 초대형 격지와 몸돌 등은 여기에서 뗀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초대형 암괴에서 뗀 것으로 추정되는 대형 격지들의 가장자리가 닳지 않고 신선하다.
3. 유적의 구석기문화
유적에서는 3개의 구석기시대 문화층이 발굴되었다. 3개 문화층에서는 공통적으로 석영맥암을 주요 석재로 사용하였고, 그 외 규암, 편암 및 편마암 등의 주변 석재를 보조적으로 이용하였다. 유물 조성 비율로 볼 때 조각과 부스러기, 격지 등의 출토 비율이 높아 주로 석기 제작의 행위가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유적에서 출토된 도구류는 잘 만든 정형적인 도구보다는 잔손질있는석기 등 보다 간편하게 날을 조성해서 사용하는 비정형의 도구 비율이 높다. 정형적인 도구 종류로 1문화층에서는 정질의 석영맥암을 이용한 쐐기가 특징적이다. 2문화층에서는 밀개와 부리날의 빈도가 가장 높았고 긁개, 홈날, 뚜르개 등의 비중이 높았다. 한편 3문화층은 석재 산지라는 입지 환경에 기인하여 도구 조성 비율에 차이가 있다. 석기 제작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는 공통점은 인정되지만, 조각이나 일반 격지들은 거의 확인되지 않았다. 초대형의 규암 암괴가 곳곳에 박혀 있거나 석재들이 켜켜이 쌓여 좋은 석재가 풍부하다는 입지에 차이가 있어서인지 기본으로 석기가 중대형이다. 아울러 작은 격지나 조각을 떼어 도구를 만들기보다는 대형의 격지 혹은 대형 조각에 잔손질한 석기가 많다. 또한 3문화층의 경우 불에 탄 자갈돌도 함께 확인되어 석재 산지에서의 석기 제작 및 불의 사용을 그려볼 수 있는 직접적인 자료가 확인되었다.
유적에서는 1·2문화층과 3문화층 사이에 큰 차이가 인정된다. 3문화층은 돌감 산지에 입지하고 있어 도구 제작의 재료가 무한히 제공되는 곳으로, 특히 질 좋은 규암이 산재해 있다. 이에 비해 1문화층과 2문화층은 돌결면이 많아 석기떼기에 어려움이 많은 석재를 이용할 수 밖에 없는 환경이다. 곧 도구 제작의 재료를 둘러싼 입지 환경의 차이가 크다. 이런 배경에 의해 빚어지는 결과가 석기 조성 비율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1문화층과 2문화층에서는 조각과 부스러기가 무수히 많고 따라서 도구의 크기가 상대적으로 작다. 반면 3문화층은 기본으로 석기의 크기가 중대형이고, 작은 격지나 조각으로 만든 석기가 적다. 이러한 양상에서 볼 때 입지적 차이가 곧 유물 조성의 차이로 이어지고, 그러한 유물 조성의 차이는 바로 석기문화 양상의 차이로 귀결된다. 바꿔 말하면 문화층별 석기문화 양상의 차이는 환경에 지배받는 구조적인 산물이며, 근본적으로 돌감의 획득 및 그 활용도에 대한 인식에서 비롯된 것(홍미영·김종헌 2008)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고찰 : 구석기시대 유물분석>
2016~2018년에 이루어진 지표조사에서는 고려~조선시대의 유물산포지로 보고되었다. 그 후 2018년에 이루어진 표본조사에서는 후기구석기시대의 2개 문화층과 뗀석기가 확인되었다. 이러한 결과에 근거하여 유적의 분포 범위 및 석기 유물상을 명확히 확인하기 위한 정밀발굴조사로 변경되었으며, 전체 12,227㎡가 발굴되었다. 해당 유적에서는 모두 1,939점의 유물이 수습되었다. 이 가운데 1,898점은 문화층에서 출토되었고, 41점은 지표에서 수습된 것이다. 전체 발굴범위 내에서도 주로 구릉 말단부와 접해 있는 남쪽 및 서쪽 조사구역에서 유물이 밀집되어 나왔다. 지층 및 문화층별로 집계해 보면 1문화층(명갈색 찰흙층)에서 299점, 2문화층(암갈색 찰흙층 상부)에서 1,415점, 3문화층(암갈색 찰흙층 하부의 담갈색 찰흙층과 적갈색 모래자갈층의 경계부)에서 184점이 나왔다.
1. 유적의 형성과정 및 시기
유적은 서쪽으로 태화산(641.1m), 북동쪽으로 국수봉(423.8m), 동쪽으로 양각산(381.5m)과 해룡산(367.1m), 남쪽으로 금박산(424.9.m) 등이 이어져 골짜기 지형을 이루고 있다. 그 사이로 노곡천과 유정천이 나란하게 동ㆍ북류하면서 도척면 일대를 가로지른다. 특히 노곡천과 유정천의 합류부보다 더 상류로 가면서 유적 일대는 플라이스토세 말의 선상지성 단구가 발달해 있다. 유적 주변의 해발고도 약 170m 이상의 위치에서 확인되는 선상지성 단구 퇴적층은 적색으로 토양화된 니질층이 자갈역층을 피복하고 있다. 단구 퇴적층은 현재보다 온난했던 최종간빙기 동안에 형성된 지층으로 보고되었다. 이들 이른 시기의 단구퇴적층은 최종빙기 동안에 두부 침식의 형태로 개석되면서 최종빙기 아간빙기를 거치며 선상지 말단부를 따라 쇄설류와 니류가 발달하였으며, 망상하천 작용으로 해발 약 163~164.5m 부근에서는 하성 사질층과 역층이 유적 전반에 걸쳐 잘 나타나고 있다. 최종빙기 최성기를 지나면서 하성퇴적층은 기준면이 하강하면서 현재의 노곡천이나 유정천 현재 하상 주변에서 유수와 평행 방향으로 하성 충적대지가 형성되어 있다.
현재 유적은 남서-북동 방향으로 길며 낮은 구릉(해발 174m 내외)의 북쪽 말단부와 평지에 해당된다. 유적 뒤(남동쪽)의 낮은 구릉 너머에는 직선거리 약 200m 지점에 유정천이, 유적 앞(북서쪽) 약 500m 지점에는 노곡천이 서쪽에서 동쪽으로 곡류하고 있다. 현재 조사 지역은 남쪽에서 북쪽으로, 서쪽에서 동쪽으로 완만한 경사와 단차를 이루며 낮아지는 논으로 개간되어 있다. 유적의 층위는 기반암 풍화대를 포함하여 모두 7개의 지층으로 구성된다. 아래에서 위로 가면서 편마암류 풍화대(Ⅶ층)-담적갈색 사질찰흙층(Ⅵ층)-하부로 갈수록 물 영향이 뚜렷한 황색 찰흙층(Ⅴ층)-담황갈색 니사질찰흙층(Ⅳ층)-암갈색 찰흙층(Ⅲ층)-명갈색 찰흙층(Ⅱ층)-경작 및 표토층(Ⅰ층) 순으로 쌓여 있다. 구릉 말단부와 평지부가 만나는 지점 주변에는 Ⅴ층 아래에서 모래자갈층이 드러나며, 그 겹겹이 쌓인 모래자갈 사이에서 3문화층이 확인된다. 그 위로 Ⅲ층 상부에서 석영맥암을 주로 이용한 2문화층이 확인되었고, 주로 서남쪽 조사구역에 접한 일부 구역에서는 Ⅱ층에서 1문화층이 드러났다. 전체적으로 유적의 지층은 남쪽 배후 산지에서 유래한 각력질 잔자갈과 니사질이 혼재하며, 사면붕적층의 퇴적물 사이에는 사질 찰흙이 충진되어 있다. 실제 조사 중앙부의 지층 단면에서는 Ⅲ층의 암갈색 찰흙층 내부에 15~20㎝ 두께의 모래모난돌층이 2번에 걸쳐 흘러내린 흔적을 읽을 수 있었다. 이러한 양상을 볼 때 각력질 암쇄류가 사면을 따라 붕적되는 과정에서 찰흙층을 침식하면서 섞이는 양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는 최종빙기 말기 동안 아빙기와 아간빙기를 거치면서 사면 작용이 왕성한 지형적 영향으로 반복적인 쓸림이 있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유물이 집중적으로 분포하고 있는 사이에서 드러난 목탄을 시료로 AMS-14C 절대연대 측정이 이루어졌다. 16칸에서 출토한 C-13번 숯(해발 165.6m)은 25.1±0.2 ka BC, 22칸의 C-15번(해발 165.4m)은 25.2±0.2 ka BC의 측정값이 나왔다. 이 측정값으로 볼 때 2문화층에 해당하는 암갈색 찰흙층(Ⅲ층)의 상부는 최종빙기 최성기(LGM)에 형성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아울러 보조 지층으로 살펴본 서쪽 조사구역의 담황갈색 니사질찰흙층(Ⅳ층)과 그 아래의 적갈색 모래자갈층 사이의 경계부에서 3문화층이 확인된다. 모래자갈층 바로 위의 니사질찰흙층(해발 165.2m)에서도 목탄을 찾았고, 이 시료로 연대측정하여 42.9±0.5 ka BC의 결과가 나왔다. 한편 3개의 문화층이 나오는 중층유적이면서 고토양층이 안정적으로 퇴적된 서쪽 조사구역의 경우 절대연대 편년을 시도하기에 좋은 여건으로 판단되어 OSL 연대측정도 수행하였다. OSL 측정 결과를 보조 지층인 12칸 단면에 정리하면, 3문화층의 상한 연대로 볼 수 있는 Ⅴ층(적갈색 모래자갈층)에서는 40.8±6.6 ka BC, 3문화층의 하한으로 볼 수 있는 Ⅳ층(담갈색 찰흙층)에서는 39.0±4.3 ka BC, 2문화층의 유물 사이에서 시료를 채취한 Ⅲ층(암갈색 찰흙층)의 측정치는 26.7±1.6 ka BC, 1문화층에서 채취한 시료는 28.7±0.9 ka BC 등으로 정리되었다. 특히 목탄으로 잰 3문화층의 절대연대와 OSL 방법으로 측정한 3문화층의 상한 연대가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 지질 환경의 측면에서 볼 때 유정리 유적은 최종빙기의 초·중기 말부터 최종빙기 최성기에 걸쳐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에 절대연대측정 자료를 종합해 볼 때 3문화층에서부터 볼 수 있는 고인류의 점거 및 활동은 MIS 3기 말경부터 MIS 2기의 최종빙기 최성기에 걸쳐 이루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2. 문화층별 석기문화
유적에서는 모두 1,939점의 유물이 수습되었다. 이 가운데 1문화층에서는 299점이 출토되어 전체의 15.4% 정도이다. 가장 많은 유물이 출토된 2문화층에서는 1,415점의 유물이 나와 전체의 73%를 차지한다. 다음 3문화층에서는 넓게 펼쳐진 모래자갈층 내에서 184점의 유물이 나와 전체의 9.5% 정도이다. 그리고 나머지 2.1% 정도의 유물은 지표에서 수습하였다.
1) 1문화층
1문화층(명갈색 찰흙층)에서 나온 석기는 모두 299점이다. 발굴조사 전체 범위 중 주로 서쪽 조사구역과 남쪽의 비탈사면부에 한해 안정적인 퇴적 상황이 확인되었으며, 그 외의 조사 지역에는 이미 삭박된 곳이 대부분이었다. 석기의 집중 분포는 22칸, 12칸과 16칸, 24~30칸 등에서 두드러졌다. 299점의 유물 중 238점이 석기제작과정의 산물류에 해당하여 전체의 79%를 차지한다. 여기에 석기제작을 위한 공구류로 망치가 5점 출토되었다. 이로 볼 때 주로 석기제작이 벌어지던 곳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도구류는 47점으로 전체의 16% 정도 나왔으나, 잘 만든 정형적인 도구보다는 상대적으로 간편하게 만들어 쓰는 잔손질있는석기의 비율이 높은 편이다. 한편으로 도구 중에는 쐐기가 6점으로 가장 많이 출토되었으며 밀개도 5점 나와 비중이 높은 편이다.
석기 제작에 사용한 암석은 석영맥암이 66%로 가장 비중이 높고, 규암은 20% 정도 차지하여 차이가 크다. 한편 1문화층에서 규암은 그리 비중이 높지는 않으면서도 주로 22칸에서 출토된 점은 특징적이다. 특히 유적에서는 편암 및 편마암, 화강암류의 주변 석재가 많이 이용되고 있고, 석영맥암도 불순물이나 돌결이 발달한 것이 대부분이다. 그런 가운데 쐐기는 정질의 석영맥암을 이용하면서도 매우 작은 크기에 이르기까지 사용된 것을 볼 수 있다. 쐐기를 이용하는 일이 빈번했음을 알 수 있으며, 좋지 않은 석재 사정이 반영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2) 2문화층
2문화층(암갈색 찰흙층)은 1,415점이 유물이 출토되어 고인류의 활동성으로 볼 때 가장 적극적인 석기 제작 활동을 기대할 수 있다. 1문화층과는 달리 구릉 말단부와 평지를 구분하지 않고 전체적으로 안정적인 퇴적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한 면을 반영이라도 하듯 동일한 모암으로 석기떼기를 벌였다고 생각되는 석영맥암제 석기 떼기 집중구역(12, 16, 19칸)에서는 기둥구멍형 유구가 확인되었다. 그 주변에서는 다량의 숯도 함께 나와 고인류의 활동성을 뒷받침할 수 있는 실질적인 자료를 확보하였다. 또한 석기제작터로 추정되는 곳과는 거리가 있으나 불땐자리 추정유구가 확인되었으며, 그 안에서도 소토 덩어리와 목탄 등이 함께 나왔다. 출토유물을 비율로 따져보면 역시 조각과 부스러기, 격지가 전체 유물의 72%를 차지하며, 망치도 11점이 나왔다. 그리고 도구류 중에서는 특정 도구보다도 손질 및 잔손질있는석기 등 가장자리 날을 확보하여 짧고 간단하게 잔손질한 도구가 가장 많다. 잘 만든 정형의 도구류 중에는 밀개(10점)와 부리날(9점)의 비중이 높다.
석기 제작에는 석영맥암(42%)을 가장 많이 이용하였고, 편암과 편마암, 규암 등을 보조적으로 이용하였다. 주변 환경을 살피는 과정에서 지질도에서 확인했듯이 재지 석재를 다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1문화층과 달리 몸체를 조정하는 예가 확인된다. 때림면 조정 외에도 격지면의 길이를 조정한 것, 너비를 조정한 것 등도 확인된다. 격지 중에는 첫격지 외에 여러면석기에서 떨어져 나온 격지, 모루망치떼기 기법 구사 중에 떨어진 격지 등도 확인되어 특정 격지떼기 기술이 확인된다. 특히 도구의 비율로 볼 때 석기제작터의 성격이 가장 명확하며, 16칸에서 나온 특정 석영맥암의 분포 상황을 보고 접합 시도했으나 직접 접합 유물이 없는 것으로 보아 유정리에서 떼고 일부 제작 결과물을 들고 다른 곳으로 이동했을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2) 3문화층
담갈색 찰흙층의 하부와 그 아래의 적갈색 모래자갈층의 경계면에 자갈이 겹겹이 쌓여 있고, 이 사이에서 뗀석기가 확인된다. 유물 중에는 날이 신선한 것과 마모된 것이 혼재되어 있다. 한편 마모된 흔적이 있는 것 위에 다시 날이 신선한 것이 남아 있어 하나의 유물에 2시기 이상의 흔적이 남아있는 예도 있다. 3문화층에서는 모두 184점의 석기가 나왔는데, 기본으로 석기가 중대형이다. 유물의 종류는 몸돌, 격지와 조각을 비롯하여 망치, 불탄자갈돌 등이다. 도구 종류로는 잔손질있는 석기가 41%를 차지하면서, 격지와 조각 및 몸돌이 전체의 42%를 차지하고 있어, 유물 조성 비율로 볼 때 독특한 양상이다. 다만 3문화층 퇴적 환경이 지속적인 침수로 조각이나 부스러기가 남을 수 없는 환경이라는 점, 문화층 전체 조사가 아니라는 점 등에서 유물 조성의 특징을 그대로 해석할 수는 없다. 다만 독특한 환경 및 부분적인 조사임을 감안하더라도 석재 산지로 볼 수 있는 자갈층 위에 잔손질된 도구류의 빈도가 대단히 높게 나타나고 있다. 이로 볼 때 석재 산지 및 제작터 이상의 기능이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석기 제작에는 다른 문화층과 마찬가지로 석영맥암이 가장 많이 이용되고 있고, 석영맥암 만큼이나 규암을 많이 이용했다. 특히 석영맥암과 규암이 70%를 차지하고 있다. 그 외에 편암 및 편마암 등 주변 석재가 주로 이용되고 있다. 3문화층에서는 여기에 응회암이 추가되었는데 단 2점 뿐이다. 암석 중 석영맥암과 편암 및 편마암은 중형인 반면, 규암은 초대형 몸돌이 많다. 자갈층에 쌓인 석재 중에는 들 수 없을 정도의 초대형 암괴가 곳곳에 산재하고 있는데, 이런 초대형의 암괴는 거의 규암이다. 유물 중 초대형 격지와 몸돌 등은 여기에서 뗀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초대형 암괴에서 뗀 것으로 추정되는 대형 격지들의 가장자리가 닳지 않고 신선하다.
3. 유적의 구석기문화
유적에서는 3개의 구석기시대 문화층이 발굴되었다. 3개 문화층에서는 공통적으로 석영맥암을 주요 석재로 사용하였고, 그 외 규암, 편암 및 편마암 등의 주변 석재를 보조적으로 이용하였다. 유물 조성 비율로 볼 때 조각과 부스러기, 격지 등의 출토 비율이 높아 주로 석기 제작의 행위가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유적에서 출토된 도구류는 잘 만든 정형적인 도구보다는 잔손질있는석기 등 보다 간편하게 날을 조성해서 사용하는 비정형의 도구 비율이 높다. 정형적인 도구 종류로 1문화층에서는 정질의 석영맥암을 이용한 쐐기가 특징적이다. 2문화층에서는 밀개와 부리날의 빈도가 가장 높았고 긁개, 홈날, 뚜르개 등의 비중이 높았다. 한편 3문화층은 석재 산지라는 입지 환경에 기인하여 도구 조성 비율에 차이가 있다. 석기 제작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는 공통점은 인정되지만, 조각이나 일반 격지들은 거의 확인되지 않았다. 초대형의 규암 암괴가 곳곳에 박혀 있거나 석재들이 켜켜이 쌓여 좋은 석재가 풍부하다는 입지에 차이가 있어서인지 기본으로 석기가 중대형이다. 아울러 작은 격지나 조각을 떼어 도구를 만들기보다는 대형의 격지 혹은 대형 조각에 잔손질한 석기가 많다. 또한 3문화층의 경우 불에 탄 자갈돌도 함께 확인되어 석재 산지에서의 석기 제작 및 불의 사용을 그려볼 수 있는 직접적인 자료가 확인되었다.
유적에서는 1·2문화층과 3문화층 사이에 큰 차이가 인정된다. 3문화층은 돌감 산지에 입지하고 있어 도구 제작의 재료가 무한히 제공되는 곳으로, 특히 질 좋은 규암이 산재해 있다. 이에 비해 1문화층과 2문화층은 돌결면이 많아 석기떼기에 어려움이 많은 석재를 이용할 수 밖에 없는 환경이다. 곧 도구 제작의 재료를 둘러싼 입지 환경의 차이가 크다. 이런 배경에 의해 빚어지는 결과가 석기 조성 비율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1문화층과 2문화층에서는 조각과 부스러기가 무수히 많고 따라서 도구의 크기가 상대적으로 작다. 반면 3문화층은 기본으로 석기의 크기가 중대형이고, 작은 격지나 조각으로 만든 석기가 적다. 이러한 양상에서 볼 때 입지적 차이가 곧 유물 조성의 차이로 이어지고, 그러한 유물 조성의 차이는 바로 석기문화 양상의 차이로 귀결된다. 바꿔 말하면 문화층별 석기문화 양상의 차이는 환경에 지배받는 구조적인 산물이며, 근본적으로 돌감의 획득 및 그 활용도에 대한 인식에서 비롯된 것(홍미영·김종헌 2008)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