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찰 : 구석기시대 유물분석>
유적은 북-남으로 이어지는 두 갈래의 능선과 계곡 일부를 포함하고 있는 산림지역으로 경사가 비교적 가파른 지형이다. 유물이 드러난 구역은 북쪽에서 남쪽으로의 경사면 중 주로 북반부이며, 해발 높이로는 142~148m에 분포한다. 유물은 뗀석기와 석재로 구성되며 모두 90점이 출토되었다. 기준 단면의 지층 쌓임은 크게 8개의 층으로 구분된다(표 2). 이 중에 Ⅲ~Ⅵ층은 토양쐐기가 관찰되는 고토양층(갱신세층)으로, 2~10㎝의 암편이 다량 혼입되어 있다. 특히 Ⅳ층과 Ⅴ층에는 일정한 두께를 이루면서 간층으로 쌓인 반면, Ⅵ층에는 전체적으로 쇄설물이 분포한다. 유물이 집중되는 문화층은 Ⅲ층, 암적갈색 사질점토층(Hue5YR 4/6)으로 석영제 뗀석기들이 출토되었다. 두께는 50~90㎝이며 비탈면 아래쪽으로 갈수록 두텁게 퇴적되어 있다.
1. 유물 조성으로 본 유적의 성격
경사면을 따라 드러난 문화층에서 총 90점의 뗀석기와 석재가 나왔다. 이 중에서 유물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켜면 조각 및 부스러기를 제외하면 모두 24점의 유물이 흩어진 채 나왔다. 전체 유물조성을 살펴보면, 조각 6점과 격지 1점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잔손질 혹은 사용흔이 남아있는 도구류이다. 손질된 도구 종류로는 찍개(1점), 주먹대패(2점), 대패(1점), 잔손질있는자갈(1점), 긁개(1점), 밀개(1점), 잔손질있는조각(6점), 사용흔있는조각(4점) 등이다. 석기 제작에 이용된 돌감은 석영맥암, 사암, 편마암 등이다. 이 중 사암제 조각1점과 편마암제 찍개 1점을 제외한 모든 석기는 석영맥암을 이용하였다. 곧 석영맥암이 22점(92%)으로 거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유적의 성격을 살펴보기 위해 출토 유물을 대분류하면, 크게 석기 제작과정에서 나온 산물류 7점과 도구류 17점으로 구분할 수 있다. 그런데 문화층에서 나온 석재 및 부스러기 등 분석에서 제외시킨 66점의 유물을 포함하여 비율을 산출하면 석기 제작과정에서 나온 산물류는 모두 73점으로 81%를 차지하는 셈이다. 바꿔 말하면 석기 제작의 재료가 되는 석재 및 제작 과정에서 나온 산물류를 포함하여 석기 제작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는 유물이 전체의 81% 정도이다. 이에 반해 석기 사용의 행위를 유추할 수 있는 도구류는 17점으로 19%를 차지하며, 소규모유적에서의 도구의 비율이 대체로 10% 미만임을 생각할 때 높은 편이다. 여기에 더해 유물에 사용된 몸체의 이용 비율을 따져 보면 조각이 6점으로 25%를 차지하고, 잔손질있는조각도 25%를 차지한다. 그 다음으로 사용흔있는조각이 17%를 차지한다. 바꿔 말하면, 출토된 전체 유물 중에는 조각과 부스러기가 가장 많고, 조각을 잔손질하여 도구로 제작하거나 조각 자체를 그대로 사용하는 예가 많음을 엿볼 수 있다. 따라서 조각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도구로 제작하거나 사용하던 모습을 그려볼 수 있다.
2. 문화층의 시기
뗀석기가 출토된 지층은 암적갈색 모래질찰흙층으로, 지층 내부에 첫 번째(상부) 토양쐐기 구조가 발달해 있으며, 지층의 중~하부에서 뗀석기가 출토되었다. 토양쐐기 발달 상태 및 지층의 특성으로 볼 때 유물이 출토된 위치는 한창균의 B1층 하부 혹은 B2에 해당한다고 판단된다(한창균 2003). B1 하부층의 연대측정치를 비교적 최근에 보고된 남한강유역의 자료로 살펴보고자 한다. 남한강 상류의 단양 수양개유적 Ⅵ지구 3문화층과 4문화층에서 나온 목탄을 시료로 AMS-14C 연대측정을 시도한 결과, 값이 일부 중복되고 서로 근접한 결과로 나타났다. 측정값 전체를 종합하면 3문화층은 35,180±450 BP로 이를 보정하면 40,172~39,321cal BP에 분포한다. 또한 4문화층 측정값의 평균은 36,980±350 BP로, 보정 연대는 41,874~41,254cal BP이다(이융조 외 2018). 이러한 절대연대 측정치를 참고할 때 B1층 하부는 40,000년을 전후한 시기로 가늠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여주 지역에서는 백석리, 내양리, 매룡리, 단현리 등이 구석기시대 유물산포지로 알려져 있으며, 발굴조사된 구석기시대 유적으로는 연양리유적이 보고되어 있다. 연양리유적에서는 하부 토양쐐기가 발달되어 있는 적갈색 점토층의 상부(한창균의 C층)에서 유물이 출토되었으며, 광여기형광법(OSL, Optically Stimulated Luminescence)에 의해 63,000±4,000 BC, 67,000±3,000 BC의 연대 측정치가 보고되었다.
이번 발굴조사에서도 뗀석기가 나오는 지층과 그 아래 지층에서 각각 OSL 연대측정 시료를 채취하였다. 보다 상부에서 채취한 시료는 Ⅲ층에 해당하고, 보다 하부에서 채취한 것은 Ⅵ층에 상당한다고 볼 수 있다. 연대측정의 결과 상부에서는 49,500±5,500 BC, 하부에서는 55,300±4,500 BC가 보고되었다. 이 측정치로 볼 때 발굴조사된 구석기시대 문화층은 한창균의 B2층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이 유적에서 출토된 뗀석기는 구석기시대의 고인류가 50,000년을 전후한 시기에 이곳에서 소규모의 석기를 제작 및 사용했던 행위의 결과물임을 유추할 수 있다.
<고찰 : 구석기시대 유물분석>
유적은 북-남으로 이어지는 두 갈래의 능선과 계곡 일부를 포함하고 있는 산림지역으로 경사가 비교적 가파른 지형이다. 유물이 드러난 구역은 북쪽에서 남쪽으로의 경사면 중 주로 북반부이며, 해발 높이로는 142~148m에 분포한다. 유물은 뗀석기와 석재로 구성되며 모두 90점이 출토되었다. 기준 단면의 지층 쌓임은 크게 8개의 층으로 구분된다(표 2). 이 중에 Ⅲ~Ⅵ층은 토양쐐기가 관찰되는 고토양층(갱신세층)으로, 2~10㎝의 암편이 다량 혼입되어 있다. 특히 Ⅳ층과 Ⅴ층에는 일정한 두께를 이루면서 간층으로 쌓인 반면, Ⅵ층에는 전체적으로 쇄설물이 분포한다. 유물이 집중되는 문화층은 Ⅲ층, 암적갈색 사질점토층(Hue5YR 4/6)으로 석영제 뗀석기들이 출토되었다. 두께는 50~90㎝이며 비탈면 아래쪽으로 갈수록 두텁게 퇴적되어 있다.
1. 유물 조성으로 본 유적의 성격
경사면을 따라 드러난 문화층에서 총 90점의 뗀석기와 석재가 나왔다. 이 중에서 유물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켜면 조각 및 부스러기를 제외하면 모두 24점의 유물이 흩어진 채 나왔다. 전체 유물조성을 살펴보면, 조각 6점과 격지 1점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잔손질 혹은 사용흔이 남아있는 도구류이다. 손질된 도구 종류로는 찍개(1점), 주먹대패(2점), 대패(1점), 잔손질있는자갈(1점), 긁개(1점), 밀개(1점), 잔손질있는조각(6점), 사용흔있는조각(4점) 등이다. 석기 제작에 이용된 돌감은 석영맥암, 사암, 편마암 등이다. 이 중 사암제 조각1점과 편마암제 찍개 1점을 제외한 모든 석기는 석영맥암을 이용하였다. 곧 석영맥암이 22점(92%)으로 거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유적의 성격을 살펴보기 위해 출토 유물을 대분류하면, 크게 석기 제작과정에서 나온 산물류 7점과 도구류 17점으로 구분할 수 있다. 그런데 문화층에서 나온 석재 및 부스러기 등 분석에서 제외시킨 66점의 유물을 포함하여 비율을 산출하면 석기 제작과정에서 나온 산물류는 모두 73점으로 81%를 차지하는 셈이다. 바꿔 말하면 석기 제작의 재료가 되는 석재 및 제작 과정에서 나온 산물류를 포함하여 석기 제작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는 유물이 전체의 81% 정도이다. 이에 반해 석기 사용의 행위를 유추할 수 있는 도구류는 17점으로 19%를 차지하며, 소규모유적에서의 도구의 비율이 대체로 10% 미만임을 생각할 때 높은 편이다. 여기에 더해 유물에 사용된 몸체의 이용 비율을 따져 보면 조각이 6점으로 25%를 차지하고, 잔손질있는조각도 25%를 차지한다. 그 다음으로 사용흔있는조각이 17%를 차지한다. 바꿔 말하면, 출토된 전체 유물 중에는 조각과 부스러기가 가장 많고, 조각을 잔손질하여 도구로 제작하거나 조각 자체를 그대로 사용하는 예가 많음을 엿볼 수 있다. 따라서 조각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도구로 제작하거나 사용하던 모습을 그려볼 수 있다.
2. 문화층의 시기
뗀석기가 출토된 지층은 암적갈색 모래질찰흙층으로, 지층 내부에 첫 번째(상부) 토양쐐기 구조가 발달해 있으며, 지층의 중~하부에서 뗀석기가 출토되었다. 토양쐐기 발달 상태 및 지층의 특성으로 볼 때 유물이 출토된 위치는 한창균의 B1층 하부 혹은 B2에 해당한다고 판단된다(한창균 2003). B1 하부층의 연대측정치를 비교적 최근에 보고된 남한강유역의 자료로 살펴보고자 한다. 남한강 상류의 단양 수양개유적 Ⅵ지구 3문화층과 4문화층에서 나온 목탄을 시료로 AMS-14C 연대측정을 시도한 결과, 값이 일부 중복되고 서로 근접한 결과로 나타났다. 측정값 전체를 종합하면 3문화층은 35,180±450 BP로 이를 보정하면 40,172~39,321cal BP에 분포한다. 또한 4문화층 측정값의 평균은 36,980±350 BP로, 보정 연대는 41,874~41,254cal BP이다(이융조 외 2018). 이러한 절대연대 측정치를 참고할 때 B1층 하부는 40,000년을 전후한 시기로 가늠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여주 지역에서는 백석리, 내양리, 매룡리, 단현리 등이 구석기시대 유물산포지로 알려져 있으며, 발굴조사된 구석기시대 유적으로는 연양리유적이 보고되어 있다. 연양리유적에서는 하부 토양쐐기가 발달되어 있는 적갈색 점토층의 상부(한창균의 C층)에서 유물이 출토되었으며, 광여기형광법(OSL, Optically Stimulated Luminescence)에 의해 63,000±4,000 BC, 67,000±3,000 BC의 연대 측정치가 보고되었다.
이번 발굴조사에서도 뗀석기가 나오는 지층과 그 아래 지층에서 각각 OSL 연대측정 시료를 채취하였다. 보다 상부에서 채취한 시료는 Ⅲ층에 해당하고, 보다 하부에서 채취한 것은 Ⅵ층에 상당한다고 볼 수 있다. 연대측정의 결과 상부에서는 49,500±5,500 BC, 하부에서는 55,300±4,500 BC가 보고되었다. 이 측정치로 볼 때 발굴조사된 구석기시대 문화층은 한창균의 B2층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이 유적에서 출토된 뗀석기는 구석기시대의 고인류가 50,000년을 전후한 시기에 이곳에서 소규모의 석기를 제작 및 사용했던 행위의 결과물임을 유추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