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Radiation To Plasma & Ion Science For Cultural Herit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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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과학연구소

연구 개발 성과

[유물분석] 청주 노산리(873번지) 농어업시설 신축부지 내 유적 구석기시대 유물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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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갖춤새> 청주 노산리(873번지) 농어업시설 신축부지 내 유적의 구석기시대 문화층 및 겉흙층에서는 뗀석기 105점이 발굴되었다. 출토 유물은 크게 석기 제작과정에서 나온 산물류 83점, 도구류(몸돌석기 및 격지석기류) 9점, 석기 제작을 위한 공구류 1점, 원석 12점 등으로 확인되었다. 다시 말하면 석기 제작을 위한 공구류 및 제작 과정에서 나온 산물류를 포함하고 있으며, 석기를 떼기 위해 수집한 원석도 함께 남아 있다. 따라서 석기 제작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는 유물은 총 96점이며 전체 석기의 91%를 차지한다. 반면, 석기 사용의 행위를 유추할 수 있는 도구류는 9점이 출토되었다. 이처럼 유물 대분류의 결과에 바탕하여 석기 비율을 따져보면 노산리 유적은 석기 제작하는 장소로 추정해 볼 수 있다.

<암석 및 유물 크기로 본 석기 제작의 특징> 유적에서 드러난 암석의 종류는 석영암, 규암을 비롯하여 응회암, 안산암, 셰일, 사암, 반암 등이다. 이 중 가장 많이 이용된 돌감은 석영암(59점, 56%)이고, 그 다음으로 비율이 높은 것은 규암(24점, 23%)이다. 나아가 돌감 구성과 유물 대분류 결과를 대조해 봤을 때, 석기 제작과정의 산물류와 완성된 도구류가 모두 확인된 돌감은 석영암과 규암이며, 특히 도구 제작에 가장 선호했던 암석은 석영암과 규암임을 알 수 있다. 실제 문화층 내 몸체 구성을 살펴보면 조각이 가장 많으며, 격지석기류의 몸체를 확인해 봐도 조각의 활용 비중이 훨씬 높다. 도구의 몸체로 이용되었을 격지와 조각, 곧 몸체의 크기를 암석별로 살펴보면 규암은 크기 편차가 두드러지면서 몸체 자체의 크기가 큰 반면, 석영암은 보다 작으면서 일정 구간에 모여있다. 이러한 경향성을 이해하기 위해 개개 몸체의 속성을 검토해 본 결과, 규암제 격지는 큰 몸체의 자갈면에서부터 격지떼기를 시작하여 켜면으로 떨어져 나간 것이 대부분이다. 곧 원석의 자갈면에 가까우면서 켜가 발달한 부분을 크게 떼는 방법이 적용되었다고 추정해볼 수 있다. 반면, 석영암은 원석의 크기가 작거나 암석 겉 부분의 켜가 떨어져나간 후 그 상태로 굴러 자갈면화된 것이 관찰된다. 이를 보다 적극적으로 정리해 보면, 자갈면이 남아있는 보다 원석에 가까운 규암 몸체 : 원석에서 켜가 떼진 후 노출 및 풍화되어 자갈면화된 속심부(핵)의 석영암 몸체로 대응시킬 수 있다. 나아가 이를 유적에 반입된 몸돌의 상태로 대별시키면, 원석의 상태로 유적에 반입된 규암 : 겉껍질이 제거된 후 유적에 남아있는 석영암으로 추정해볼 수 있다. 따라서 노산리 유적에서의 격지떼기는 암석별로 출발점이 달랐을 가능성이 제기될 수 있다. 규암제 자갈의 경우 큰 원석에서부터 격지떼기가 시작되고, 아울러 켜가 많이 끼어있는 겉쪽의 자갈면을 없애기 위해 크게 떼는 방식으로 격지떼기가 시작되었다고 추정해볼 수 있다. 그런 반면 석영암의 경우 보다 작은 원석에서 격지를 떼거나 겉 부분의 켜가 제거된 상태에서 속심 부분을 2~6㎝ 정도로 작게 떼는 과정이 중심이었다고 볼 수 있다.

<문화층 시기> 유적은 금강 본류의 제방 북쪽에 형성된 충적지에 자리하고 있다. 이 주변에는 노산리 2지점, 노산리 3·4·5지점을 비롯하여 여러 지점에서 구석기시대 문화층이 확인되었으며, 강 건너 맞은편에서는 용호동유적이 조사되었다. 그러나 각 지점별 지층 퇴적 양상이 동일하지 않으며 조사 범위도 넓지 않아 직접적인 시기 연결 및 비교에는 아직 어려움이 있다. 이번 노산리(873번지) 유적 조사에서 확인된 문화층은 암갈색 점토층이다. 지층 내에서 유물의 출토량은 많지 않으며 특징적인 기법을 보여주는 유물도 확인되지는 않아 유물 분석 결과만으로 시기를 비정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단 유물이 출토된 암갈색 점토층 내부에는 LGM(Last Gracial Maximum) 시기에 형성되었다고 볼 수 있는 첫 번째 토양쐐기가 확인된다. 이에 근거할 때 유적의 형성 시기는 MIS 3기에 해당된다고 판단된다.